작가 소개
이 책의 글쓴이인 최은영 작가는 1984년 경기도 광명 출생입니다. 그녀는 고려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후 2013년 작가세계신인상에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가 당선되며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최은영 작가가 지은 책으로는 소설집인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과 장편 소설인 '밝은 밤'이 있습니다. 그녀는 허균문학작가상, 김준성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 작가상, 이해조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대산문학상, 제5회, 제8회, 제11회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습니다.
최은영 작가는 등단작이자 제5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인 '쇼코의 미소'로 문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기 시작하였으며 '진솔하고 모든 것을 끌어안으려는 작가의 마음이 밀도 있게 묻어난 감정의 정수이다.'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사람의 관계 속에서 그들을 사유하는 깊은 통찰력과 씁쓸함을 자아내는 작가 특유의 고유한 작품의 정서는 '쇼코의 미소'를 시작으로 작가가 작품을 그리는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작가는 두 번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으로 신인 때 보이던 미성숙한 감각이 사라지고 훌륭하고 세련된 문체와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작 중 첫 번째 수록작인 '그 여름'은 2017 젊은 작가상을 수상하게 하는 등 평단과 대중 사이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았고, 이후 애니메이션으로 개봉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녀는 페미니즘, 이민,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 통찰력,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잃지 않는 따뜻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작가의 강점인 소설적 서사를 자연스럽게 끌어가는 능력과 서정적인 문체와는 달리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선과 악의 구별은 상당히 뚜렷한 편인데, 그 구분은 주로 남녀의 성을 따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부분의 남성 등장인물들이 부정적인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런 인물일지라도 소설의 서사가 진행되며 존재감이 사라져 가고, 결국에는 여성들이 이루어가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귀결되는 이야기 패턴을 볼 수 있습니다.
줄거리
'내게 무해한 세상'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총 7개의 단편 소설을 담고 있는 소설집입니다.
첫 번째 수록작인 '그 여름'은 이경과 수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여학생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 두 사람은 고등학교 축구부였던 수이가 찬 공에 이경이 맞으면서 처음 만나게 됩니다. 둘은 그 사고를 시작으로 함께 양호실과 안경점에 가게 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됩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서로의 몸에 맞닿게 된 순간이면 둘은 알 수 없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경의 집이 비는 날에는 매일같이 함께 있었습니다. 둘이 스무 살이 되면서 이경과 수이는 서울로 이주했습니다. 이경은 대학을 다녔고, 부상으로 축구를 그만둔 수이는 서울 외곽의 직업학교에서 자동차 정비 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깊은 이야기를 나눴던 둘은 현실의 매서움 속에서 점점 서로에 대한 감정이 바래져 갔고, 대학생활을 하며 만나게 된 수이와 비교되고 더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친구들은 만난 이경은 수이와 헤어지자고 합니다. 이후 시간이 지나 과거의 자신과 수이를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이경을 마지막으로 소설이 끝납니다.
두 번째 수록작인 '601,602'는 옆 집에 사는 두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주인공인 '나'와 옆 집에 사는 효진이는 비슷한 요소들 탓에 어린 나이에 친구가 됩니다. 효진이네 집은 적어도 한 달에 세 번은 제사를 지냈는데 그때마다 남자들이 술을 마시고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1991년 여름밤, 효진이보다 5살 많은 13살 기준은 효진이의 어깨를 벽에 밀어붙이고 무릎으로 효진이의 배를 가격했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기준이 효진이를 때릴 때마다 효진이 아빠는 심드렁하게 "아 잡겠다. 적당히 해라." 하며 한마디를 툭 던질 뿐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엄마도 그 사실을 방관하였습니다. 여느 때처럼 효진이가 맞던 어느 날 '나'는 기준을 말리고, 효진이네 부모님께 말려달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효진이네에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소설은 효진이네가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되고 점차 '나'와 효진이 사이의 연락이 끊어지게 되면서 끝납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수록 작은 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서 직접 책을 통해 그 여운과 감정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소설들도 모두 인물의 상황과 감정선을 따라가며 읽을 수 있으니 다양한 친구들은 얻은 기분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상 깊은 문장
저는 '그 여름'과 세 번째 수록작인 '모래로 지은 집'에 인상 깊었던 문장들이 있어서 가져와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필사를 하기도 했었던 문장입니다.
수이는 자신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오래 바라볼 수 있구나. 모든 표정을 거두고 이렇게 가만히 쳐다볼 수도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경은 자신 또한 그런 식으로 수이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 P.13
자신의 몸이라는 것도, '나'라는 의식도, 너와 나의 구분도 그 순간에는 의미를 잃었다. 그럴 때 서로의 몸은 차라리 꽃잎과 물결에 가까웠다. 우리는 마시고 내쉬는 숨 그 자체일 뿐이라고 이경은 생각했다. 한없이 상승하면서도 동시에 깊이 추락하는 하나의 숨결이라고. - P.14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내 말에 모래는 고개를 돌렸다. 그 말이 모래를 어떻게 아프게 할지 나는 알았다. 나는 고의로 그 말을 했다. 너처럼 부족함 없이 자란 애가 우리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영역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 - P126~P127
감정선이 생긴 상태로 그를 따라 읽어, 절절히 가슴속에 새겨졌던 문장들입니다.
독후감
저는 개인적으로 단편 소설보다는 장편 소설을 즐겨 읽는 편입니다. 책 속 인물의 상황과 감정선을 깊이 이해하고 그 감정의 파도를 함께 경험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책 역시 장편 소설일 거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아니었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인연이라고 생각하여 차분히 읽어나갔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태 읽었던 다른 단편 소설들과는 달리 짧은 분량일지라도 그 속에 담긴 인물의 감정이 짙어서 어렵지 않게 소설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특히 첫 번째 수록작인 '그 여름'과 세 번째 수록작인 '모래로 지은 집'은 가장 와닿은 문장들도 많고, 깊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평소에는 생각해 본 적 없던 동성애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의 계기를 제공해주었기도 했고, 모래와 '나', 공무 세 사람의 우정과 사랑에 대해서, 풍족한 집안에서 자라온 모래와 '나'가 가질 수밖에 없는 마음의 차이, 집의 여유와 마음의 여유가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등 여러 면에서 생각의 기회를 제공해 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글을 읽는 여러분께서도 한 작품, 한 작품씩 읽어나가시면서 그 파도에 타보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